기황후, 주진모 충혜왕으로 '연기'도전

 

 

 

 

 

 

 

2013년 10월 28일 첫방송을 시작하는 대하사극 '기황후'는

최근 '역사왜곡'의 파문에 휩싸여있습니다.

고려를 농단한 기황후와 세 어머니를 겁탈한 고려 충혜왕을

영웅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논란의 진상입니다.

 

 

 

제작진에 따르면 기황후는 낯선 이국 황실에서 고려 자긍심을 지키며

운명적 사랑과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게 될 여인이라고 표현하며

특별한 감성, 매혹적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그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충혜왕은 어떤 인물일까요?

 

휘(諱) 정(禎). 충숙왕의 아들. 어머니는 홍규(洪奎)의 딸 명덕태후(明德太后).

비는 원나라 관서왕(關西王) 초팔(焦八)의 딸 덕녕공주(德寧公主).

1328년(충숙왕 15) 세자로 원나라에 볼모로 가 있다가 이듬해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를 원하여, 원나라 문종(文宗)이 왕으로 책봉하여 1330년에 귀국하여 즉위했다.

본성이 호협(豪俠) 방탕하여 주색과 사냥을 일삼고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원나라에 국새(國璽)를 빼앗기고 부왕 충숙왕에게 양위한 뒤, 다시 원나라에 가서도

황음광포(荒淫狂暴)한 짓을 계속하였다.

 

 

 

 

 

 

1339년 충숙왕이 죽자 복위하였으나 방탕함은 여전하여 서모인 경화공주(慶華公主)와

수비(壽妃) 권씨(權氏)를 욕보이고, 미녀가 있으면 귀천을 불구하고 농락하였다.

이어 사신을 보내 원나라에 뇌물을 바치고 국새의 반환을 요청했는데, 그때

그에게 욕을 본 경화공주의 밀고로, 조적(曺頔) 등 심양왕(瀋陽王) 일파가 국새를 영안궁(永安宮)에

감춘 뒤 군사 1,000명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하였다.

이듬해 원나라에 가서 형부(刑部)에 투옥되어 경화공주의 사건을 심양왕 일당들의 증언과

대질하게 되었으나 그를 미워하던 백안(伯顔)의 실각으로 석방되어 귀국했다.

그러나 여전히 횡포가 심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화를 탕진함으로써 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이운(李雲) 등의 상소로 횡포가 원나라에 알려지자 1343년 원나라 사신들이

그를 게양(揭陽;山東省)에 귀양보냈는데, 이듬해 죽었다.

 

 

 

 

 

 

 

하지만 서울대 이강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그는 왕권강화(금령11조 포함)에 노력,

만성적인 왕실재정의 결핍을 해결하고 재정을 확보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는 의견도 있다.

 

 

 

 

 

 

 

  기황후를 바라보는 드라마의 시각은 어떤가?

 

"기황후를 바라보는 드라마의 시각은 이러한 왜곡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다.

드라마에서 기황후는 시종일관 재물을 탐하고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고려를 핍박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너무나 다르다."

 

 

 

 

사극은 픽션(fiction)이냐 팩트(fact)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예민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려 충혜왕시기 정치적 외교적 상황을 생각해보고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부분을 감안한다면,

왜곡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한계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충혜왕이 원나라의 사위로서 받는 스트레스

친원파 대신들의 압박과 질탄을 받는 충혜왕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4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컴백한 주진모가 과연 어떻게 충혜왕을 연기할 지 기대가 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라마씨 dramassl

댓글을 달아 주세요